[번역] 학자로서 갖추어야 하는 태도학계에 대한, 덜 알려진 몇 가지 진실: 박사과정을 고려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
수년 전 Facebook 타임라인에서 아래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대충 이야기해서 "학자로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중요한 태도"를 기술하고 있다. 각잡고 한번 번역해 본다.
솔직히 말해서 아래의 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박사과정이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다"는 것과,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전 충분히 고려해보아야 할 것은 많다"는 것에는 충분히 동의한다. 또, 아래에서 지적하는, 박사과정 시작 전 학계에서의 삶에 대해 고려해야 하는 세 가지 사항들이 모두 중요하다고도 생각한다. 다만 그 정도와 묘사에 대해서만 조금 동의하지 않는 면이 있을 뿐이다.
거의 대부분의 한국 고등학생이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지만, 그보다 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주 많은 수의 (특히 KAIST) 졸업생들이 (특히 KAIST)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현상"이다.
4년은 빠르다. 5년도 빠르다. 별다른 고민 없이 군문제도 해결해주고 학위도 주는 대학원에 진학해야한다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보내기에는 충분히 빠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래의 글이--혹은 더 아래의 번역이-- 잠시나마 신중히 대학원 진학을 생각해볼 만한 자극이 되었으면 한다.
www.chronicle.com/article/some-lesser-known-truths-about-acad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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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에게 "박사과정에 진학해야 할까요?"를 묻는 것은 탑스타 배우에게 "배우가 되어야 할까요?"를 묻는 것과 같습니다.
박사과정을 시작한다면,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주 적은 사람들만이 충분히 똑똑하지 않다는 이유로 박사과정을 그만둡니다. 반면, 박사과정을 그만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사학위를 받는 것과 그 과정이 그들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그만둡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학자로서의 삶을 살아보기 전까지는 그것이 무엇인지, 어떠한지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학자로서의 삶을 살아보고, 그들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학계를 떠납니다.
교수에게 박사과정 진학에 대한 조언을 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학자로서의 삶이 그들에게 잘 맞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택 문제"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선택 문제는 우리가 어떤 "절차"--여기에서는 학계에서의 삶--를 이해하려고 할 때, 그 절차를 잘 마친 사람들에서만 샘플이 선택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예를들어, 교수라는 집단은 박사과정에 지원했거나, 시작했거나, 끝낸 사람들 중에서 무작위로 뽑아서 이루어진 집단은 아닙니다. 그들은 보통의 사람들에 비해 학계에서의 삶 혹은 교수/학자로서의 삶을 즐길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학계를 떠나기로 결정한 포닥으로서, 저는 조금은 다른 관점을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박사과정과 학계의 몇가지 측면들이 모두에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테뉴어 트랙 교수 잡마켓의 좋지 않은 상황과, 우울증을 겪는 박사과정 학생들의 높은 비율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시들은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것들입니다. 대신 여기서는, 누군가에게는 좋고 또 누군가에게는 좋지 않은 측면들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두 가지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 앞으로의 이야기들은 불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계에서 살아가면서 저는 별다른 문제를 겪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저는 좋은 학교의 박사과정에 진학했고, 모든 것을 순조롭게 마쳤습니다.
- 또한, 앞으로의 내용들은 제가 박사과정 동안 받은 조언들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저에게 조언주신 분들을 만난 것을 아주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학계를 떠난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이고, 아래의 요소들이 어느 정도 기여했을 뿐입니다.
다음은 우리가 학자로서의 삶을 고려하기 전 반드시 고려해야할, 학계의 덜 알려진 진실입니다. 특히, 학자로서의 삶에서 갖추어야만 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즐길 수 있어야만 합니다.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부생에게 "장기 프로젝트"란 몇 달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학자에게 "장기 프로젝트란" 훨씬 더 긴 시간을 요구하며, 학자로서의 삶에서는 모든 것이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저의 한 논문의 타임라인을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공저자와 2012년 중반부터 논문의 아이디어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초안을 작성하는 데에만 6개월이 걸렸고, 2013년이 되어서야 콘퍼런스에서 이를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4년이 되어서야 저널에 투고할 수 있었고, 세 곳의 저널에서 리젝을 받았습니다. 결국 2015년 10월에 네 번째 저널에서 억셉이 되었고, 2017년 봄까지도 출판되지 않았습니다. 즉,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5년이 되어서도 저널에 출판되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 경험이 평균적인 출판 기간보다 길 수 있지만, 학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거나 익숙해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아주 긴 시간을 잘 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데드라인이 몇년 후인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어떻게 계획하고 시작해야 할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 과정에서 아마 아주 큰 프로젝트를 여러 가지의 작은 태스크로 쪼개어 관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쪼개진 태스크마저도 짧막한 것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대체로 우리는 아주 긴 시간 동안 무언가를 고민해야 할 태스크를 수행할 것입니다. 저는 박사과정 동안 수없이 많은 시간을 그저 벽을 보고 마음 한 켠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보냈습니다. 이러한 태스크들은 언제 끝날지, 혹은 언제 끝낼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오밤중에 잠에서 깨 무언가를 적어 내려 가는 것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 성공하지 못했다는 기분에 익숙해져야합니다. 성공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기는 하지만, 별로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하루에 1~2% 정도의 진척을 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작은 조각이 거대한 큰 퍼즐의 어느 조각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박사과정의 또 다른 진실 중 하나는, "이정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5~6년간의 박사과정 동안, 자격시험, candidacy defense, dissertation defense 정도가 "잘하고 있다" 정도를 이야기해줄 것입니다. 이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스스로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연구실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오직 연구실적으로만 박사과정을 성공적으로 보내고 있는지 판단한다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아주 우울할 것입니다.
저의 박사과정 초반에 지도교수님께 들었던 조언은, "지속적으로 실패를 잘 관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박사과정 중의 각각의 작은 성취에 있어서 수많은 실패가 동반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널에 리젝 되거나, 잔인한 리뷰를 받거나, 혹은 며칠 동안 공들인 작업에서 사소한 결함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반복적인 실패들은 본질적인 영역에서 새로운 지식/지혜를 창출해낸다는 점에서 학자로서의 삶에서 분리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고 되뇌며 잠자리에 드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면, 아마 학계는 당신과 잘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디에 살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아야 합니다. 최근 들어서 테뉴어 트랙 잡마켓 시장은 아주 치열해졌습니다만, 아직도 많은 박사과정 학생들은 이런 잔인한 시장에 본인들의 미래 (혹은 미래를 위한 노력)을 희생하고 있습니다. 테뉴어트랙 한 자리에 지원하는 사람의 수는 100명 이상으로 아주 많지만, 인터뷰 기회를 얻는 지원자는 5% 이내입니다. 그렇기에,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 박사과정 학생들은 그들이 나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곳에 지원을 해야 합니다.
간혹 박사과정을 갓 시작한 학생들은 "저는 Kansas 대학 같은 곳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Kansas 대학에서 직업을 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Kansas 대학에서 직업을 구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울 것입니다. 최상위 학교의 박사과정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Kansas 대학에서 직업을 수하는 것은 "최고의 시나리오"일 것입니다.
특히, 특정 지역을 벗어나고 싶지 않아 하는 가족이 있는 사람은 테뉴어 트랙 잡을 구하는 것이 아주 어려울 것입니다. - 거처를 자주 옮기는 것을 불편해하지 않아야 합니다.테뉴어 트랙 잡을 구하는 것은 아주 어렵기 때문에, 갓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자주 옮겨다니며 계약직 직업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직업의 상당수는 건강보험과 같은 기본적인 혜택을 제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 계약기간동안 충분한 연구실적을 쌓는다면 테뉴어트랙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계약직 직업에서는 아주 많은 과목에 대한 티칭 업무를 수행해야하기 때문에 충분한 연구실적을 쌓는 것이 몇배로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박사과정을 마친 후 가장 이상적인 것은 테뉴어트랙 잡을 구하는 것이겠지만, 실제로는 계약직 직업을 구해야 할 가능성이 훨씬 크며, 이러한 계약직 직업은 잦은 이사 혹은 이직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상황이 결혼 혹은 가정과 연결된다면 직업을 구하는 것을 훨씬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만약 독신인 상태로 박사과정을 시작하여 "학자 부부"의 관계가 된다면, 곧이어 "two-body problem"이라고 불리는 문제를 직면할 것입니다. 이는 학자 부부가 "한 명이 직장에서 몇 시간 떨어진 곳에 살면서 일주일에 2~3일 출근하거나", "영원한 장거리 부부"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에서 언급된 요소들은 사람들마다 다르게 느끼므로, 우리는 5~6년의 삶을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투자해버리기 전에 이를 고려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두 요소는 제가 학계를 떠난 가장 큰 이유입니다. 저는 제가 살 곳에 대한 결정권을 잃고 싶지 않았고, 자주 이사/이직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직업을 구할 때 편향된 지원을 하였고, 결국 아무런 직업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위 요소들 중 단 하나라도 타협하고 싶지 않다면, 학계는 단지 직업을 구할 수 없는 6~8년간의 "훈련"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본 글이 마냥 부정적으로 읽히지는 않고, 학자로서의 삶을 고려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작용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학계에는 제가 좋아하는 아주 많은 측면들도 존재합니다. 특히 저는 저의 6년간의 박사과정 시절을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진행했던 연구는 아주 흥미로웠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주 멋졌습니다.
단지 장단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박사과정을 고려하거나 시작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열린 눈으로 학계 혹은 학자로서의 삶을 바라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