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권력적 폭력
오늘 초등학생을 폭행한 교사에게 실형이 선고된 아래의 기사를 보았다. 놀라웠다. 저 교사의 행위가 놀라운 것보단 이제 저런 문제들이 다루어지고 기사화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방향이 놀라웠다. 기사에서처럼 초등학생에게 저 정도의 폭력을 가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중학생 때는 나무 막대기에 절연테이프나 청테이프를 칭칭 감은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교사는 흔히 보였다. 그것으로 허벅지나 발바닥을 때리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 내가 중학교 2~3학년 때만 해도 "학생들에 대한 체벌 금지" 같은 법안인가를 도입하는 것이 고려되었을 때인데, "정말 체벌이 없어도 될까?"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열띈 토론의 주제였다. 나는 중학생 때 강원도내 아동들의 권리 증진을 위한 콘퍼런스 등에 일종의 의원 자격으로 꾸준히 참석했는데, 그곳에서조차 정말 체벌이 없어도 될지는 찬반이 많이 갈리는 화두였다. 혹자는 매가 없으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들이 실제로 주장하려던게 매가 있으면 말을 듣는다 인지 매가 없으면 말을 듣지 않는다인지 모르겠는데, 사람을 두들겨 패서 복종시키는 것은 누가 못할까?
https://news.v.daum.net/v/20210625070235294
나는 물리적 폭력은 당연히 없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위에서처럼, 이제는 이에 대한 문제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되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모든 폭력이 개선되고 있는가는 잘 모르겠다. 나는 8살짜리 조카가 있는데, 하루는 친구 OO이가 숙제를 맨날 안 해온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 친구가 숙제를 안 해오는걸 어떻게 아냐고 물었고,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이야기한다고 했다.
충격적이었다. 숙제를 안해온 것이 잘못일 수 있고, 교사는 이를 개선하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반 친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숙제 안 해옴을 지적해서 망신을 줘야 했을까. 그 친구가 숙제를 안 해온 사실을 반 친구들이 알아야 했을까. 이를 통해 무얼 얻고자 한 걸까. 망신당하기 싫으면 숙제를 해올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면 가성비 뛰어난 전략이긴 했겠다. 당사자 말고 반 전체에게 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을 테니. 더군다나 "선생님"이라는, 아이들에겐 높게만 보이는 존재가 한 친구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니 말이다.
만약 그 친구에게 정말 숙제를 할 수 없었던,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면 어떨까? 과연 그 교사는 저런 공개망신을 주기 전에 "그럴만한 사정이 없었음"을 확인하기나 했을까? 설령 확인했다 하더라도 그런 공개망신이 정당성을 가질 순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교사의 저런 것이 왜 문제인지 납득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 물론, 위에서 저런 공개망신을 당한 그 친구도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아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이러한 분위기에 무심코 노출된 것이 결과적으로 무슨 일이나 의혹만 제기되었다 하면 달려들어 조리돌림 해 데는 어른들의 모습이 된 것 아닐까 싶다. "너는 악하기 때문에 선한 우리에게 망신당해야 해"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리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렇담 교사의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의 유년시절 경험에 비추어보면, "나는 너를 가르치는, 너보다 많이 알고, 너보다 앞선 존재야"라는 생각이 일부 권위적인 교사에게 권력적 폭력을 행하게끔 하는 것 같다.
나는 중학생 때 한 수학교사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날 가르치다보니 내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수업시간에 이것저것 질문하고, 가끔씩 틀린 내용을 지적하는 내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나중엔 나도 별로 그 사람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하루는 나에게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수업시간에 말하지 말고 쉬는 시간에 찾아오라고 했는데, 그 뒤로는 그냥 지적을 안 했다. 첫째로, 사람이면 누구나 틀릴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는 교사가 틀린 내용을 말했다고 해서 교사로서의 자격이 없다거나, 잘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둘째로, 나는 그냥 쌍방향식 수업이 좋았다. 나 역시도 질문이나 지적에 오류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고, 이를 역시 지적받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만약 정말 교사가 잘못된 내용을 전달했다면, 그걸 왜 내가 쉬는 시간에 직접 찾아가는 수고로움을 겪어야 할까 싶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사건은 중학교 3학년 때 일어났다. (이 사람은 내가 중3 때는 날 가르치지 않았다.) 1학기 기말고사였나, 주어진 삼차 다항식을 부피로 갖고 각 변의 길이가 일차 다항식인 직육면체의 겉넓이를 구하라는 문제였다. 예를 들어 주어진 삼차 다항식을 $x^3 - x$라고 하자. 그럼 의도했던 풀이는, $x^3 - x = x(x-1)(x+1)$임을 이용하여 $2x(x-1) + 2x(x+1) 2(x-1)(x+1)$을 겉넓이로 적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에 오류가 있다. 예를 들어 각 변의 길이가 $x/2, 2(x-1), (x+1)$일 경우 겉넓이는 달라지는 것이다. 즉, 각 변의 길이가 최고차항의 계수가 1인 일차 다항식으로 명시했어야 했다. 나는 이를 수학선생님께 말씀드렸고, 수학 선생님도 수긍하셨다. 그런데, 이 문제의 출제교사가 위에서 언급한 그 교사였고, 그 교사는 당연히 최고차항 계수가 1인 거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학교에서 가장 넓은 교무실에서 나에게 큰 소리를 치며 수학에 재능도 없으면서 까불지 말라고 하였다.
물론 당시의 나는 수학에 재능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수학을 좋아하고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에게 그렇게 했어야 했을까.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나를 그렇게 판단할 근거도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 사람은 그로써 무얼 얻고자 했을까. 본인에게 굴복하고 수학을 포기하길 바랬을까. 그 사람은 아직도 학생들에게 그러고 있을까.
당연히, 모든 교사가 권력적 폭력에 가담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정말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생님들은 훨씬 더 많이 계신다. 중학생 때 어떤 고민이든 묵묵히 들어주시던 국어(지금은 상담) 선생님이 계셨고, 중3 때 수학 선생님은 내가 수학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여러모로 도와주셨다. 고등학교 때 만난 선생님들은 너무나도 좋은 분들이셨다. 어떤 질문에도 즐겁게 답해주셨고, 만약 내가 더 많은 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면 시간 내어 필요한 지식들을 가르쳐 주셨다. 수업 중 엉뚱할 수 있는 질문으로 반 학생들에게 야유를 받을 때에도 흥미로워하시며 새로운 내용들을 전달해 주셨다. 교과 외로 혼자 그냥 이것저것 공부하는 과정에서 궁금한 것들에도 찾아뵈면 시간 내어 설명해 주셨다.
어린아이일 때부터, 성인이 되기 직전까지. 약 10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교사라는 존재와 마주한다. 가르침을 주고, 이를 배워나가는 관계 속에서 어느 정도의 수직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이 안에 숨겨진 일종의 권력이 권위주의적인 교사의 눈에 발견되고, 권력적 폭력으로 이어진다면 참담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특히,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거나 학생에게 상처를 주는, 보이지 않는 폭력은 주위의 공감을 얻기 힘든, 외로운 폭력이 될 것이다. 또, 어른들이 보이는 추잡한 모습 중 일부는, 어린 시절 겪은 외로운 폭력을 기저로 하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