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아무생각

나같은 사람이 수학에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러직맨 2022. 1. 8. 02:22

Bill Thurston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수학자 중 한 명이다. Mathoverflow에 "나 같은 사람이 수학에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이 올라왔고, Bill Thurston의 이에 대한 답변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 중 하나이다. 평소에 틈틈이 반복해서 읽어보기도 하고, 공부나 연구하다 턱 막혀 밝지만은 않은 생각이 들 때도 읽어보고는 한다. 꼭 수학이 아니더라도 공부나 연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공부하다 딴짓도 좀 하고 싶기도 하고 마침 생각도 나서, 글 말미에 번역을 남겨본다.  https://mathoverflow.net/questions/43690/whats-a-mathematician-to-do

 

What's a mathematician to do?

I have to apologize because this is not the normal sort of question for this site, but there have been times in the past where MO was remarkably helpful and kind to undergrads with similar types of

mathoverflow.net

Bill Thurston은 전설적인 수학자이다. 흥미로운 일화도 엄청 많다. Thurston의 제자였던 Benson Farb는 Thurston과의 두번째 미팅에서 "cusps가 있는, 음의 곡률을 가진 다양체의 기본군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Thurston은 눈을 깜빡이며 허공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2분 정도 후에 "아, 결국 거품들이 유한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군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미팅이 끝나고 도서관에 가 공부를 하던 Farb는 "거품, 유한한 상호작용..."이 적힌 노트를 보며 이게 뭐지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Farb 본인의 박사학위 논문을 짧게 한 문장으로 요약해야 한다면, 그것은 "유한한 상호작용을 하는 거품들"이라 할 것이라고. https://www.math.uchicago.edu/~farb/papers/thurston.pdf

질문으로 돌아가서, Thurston의 답변 요지는, 한 개인이 수학에 기여하는 방식은 어떤 결과를 증명하는 것이 아닌, 수학 공동체에서 사고를 공유하는데에 있다는 것인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때인가, Bill Thurston (특히 그의 기하화 프로그램)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여러 위대한 수학자들의 스토리를 접하며 나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는 했다.

어린 시절의 그런 마음은, 수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그들과 같은 사람이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아프게 떠오르고는 했다. 학부시절 엄청나게 추상화된 수학을 접하면서도, 그리고 연구를 시작하면서도. 수학자가 되려면 어릴때부터 반짝이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고, 예리한 질문과 영리한 아이디어를 장착하고 있어야만 할 것 같고 말이다. 그러던 와중 "모든 수학자가 Thurston일 필요는 없어요"라는 학부 연구지도교수님 말씀과 함께, Thurston의 위와 같은 글이 나에겐 큰 자신감이 되었다.

박사과정을 하면서도 종종 교수님들께서는 "세상에 진짜 새롭고 혁명적인 아이디어는 별로 없다. 다만 그러한 몇몇 아이디어를 잘 이해해서 내 사고를 확장하며 연구하는 것이다."고 말씀 주신다. 이제는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안정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 묵묵히 내 생각을 밀어나가다 보면 그것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고, 또 그러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도 낼 수 있고 그러지 않을까 싶다. 수학자 저마다의 역할이 구분 지어진 것은 아니지만, 모든 수학자가 새롭고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Mathoverflow에 올라온 질문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제 질문은 나같은 사람이 수학에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입니다. 수학은 가우스나 오일러 같은 위대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그들의 업적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책을 현대의 언어나 기호로 다시 기술하고, 다른 사람들 또한 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가능합니다만, 나는 이것이 수학자의 역할 중 중요한 영역이라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학자의 역할은 새로운 수학을 창조하는 것일 겁니다.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들이 수학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을 것이기에, 나처럼 특별한 재능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남겨진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Bill Thurston의 답변이다.

우리가 기여해야할 것은 수학이 아니라, 사실은 그보다 훨씬 심오한 것입니다. 우리는 수학을 통해 어떻게 인류와 세상의 안녕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이해하는 것 이상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에, 이러한 질문은 순전히 지적인 측면으로만은 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극히 사회적이고 본능적인 동물입니다. 따라서 인류와 세상의 안녕은 단순히 지적인 측면으로만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우선 우리의 마음과 열정을 따라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잘못된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옳은 방향"을 단순히 지적인 면에서 알아낼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는 않습니다.

수학의 산물은 정리(theorem), 즉 새로운 발견이나 명제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수학의 산물은 세상을 명확하게 하고 우리의 이해를 넓히는 데에 있습니다. 예를들어 생각해 보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나 푸앵카레 추측(정리)과 같이 역사적으로 아주 유명한 결과들이 그 결과 자체로 중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들이 정말 중요했던 이유는 각각의 특정한 명제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를 도전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수학적인 발전을 야기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중요한 진짜 이유입니다.

특정 수학이, 혹은 수학적 결과가 세상을(혹은 다른 것을) 어떻게 발전시키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발전시키기는 하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각각의 수학들이 한데 모인 그 집합체는 아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수학은 사람의 마음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수학에서 심리적 요소가 아주 크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성이 배제된 수학은 그저 컴퓨터 코드에 불과할 것입니다. 아무리 단순한 수학적인 아이디어라도,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전해지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 사람의 내면에서 다른 사람의 내면으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떠올리기 아주 어려운 수학적 아이디어도 한번 잘 음미하고 나면 쉽게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수학적 사고와 이해는 쉽사리 전파되지 않습니다. 또, 이는 종종 붕괴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한 분야의 전문가가 죽거나 은퇴할 수도 있고, 혹은 다른 분야로 전향하여 잊히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수학은 개념적 형태보다는, 의사소통에 용이한 기호나 구체적인 형태로 기록됩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기호나 형식을 개념적인 형태로 전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더욱이 수학적인 관습과 당연시 여겨지는 지식을 변하기에, 시간이 지난 텍스트는 이해하기 훨씬 어려워집니다.

결국 수학은 "살아있는 커뮤니티"에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수학자들은 수학적 사고와 이해를 전파하고, 오래된 아이디어와 새로운 아이디어 모두에 숨결을 불어넣습니다. 수학으로부터의 진정한 만족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고, 다른 사람들과 사고를 공유하는데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몇 가지에 대해서만 분명히 이해하고 있고, 대부분에 것들에 대해서는 모호한 개념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깊은 이해와 설명이 필요한 아이디어는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그 작은 땅에 누가 첫발을 내딛는지는 부수적인 문제입니다.

혁명적 변화는 분명 중요합니다, 그러나 혁명은 아주 적게 일어납니다. 그리고 혁명은 자급자족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혁명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수학 공동체에 크게 의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