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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아무생각

Attitude

시간이 지나고 무언가에 매진할수록 점점 더 강하게 드는 생각은, 내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나의 명민함보다는 태도, 사고방식 등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말로 쓰니 다 다른 느낌 같아서 그냥 Attitude라고 하겠다. 어린 시절에는, 당장에 학부 2~3학년쯤 까지도 이런 생각은 들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무언가를 잘하면 그건 내가 잘해서 그런 거고, 또 공부를 하면서 접한 잘하는 사람들은 아주 영리하고 뛰어난 면만 보였기 때문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어떻게 해야 내가 원하는 것에 달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 그리고 그동안 스스로가 잘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돌아보니, 딱히 내가 똑똑하거나 영리해서라기보다는 그저 그때의 내 자세가 당시 상황과 잘 맞물려있었던 것 같다.

나는 중학교때 공부를 엄청 잘하지는 않았다. 학교 전체에서는 그래도 높은 편이긴 했으나, 막 극단적으로 잘한다거나 "공부 잘하는 애"로 꼽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그래도 과학고를 가겠다고 열심히 하느라 성적이 잘 나온 것 같은데, 2학년 때부터는 성적이 점점 떨어졌다. 당시 내 삶의 자세에 몇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첫째로 암기만 달달 시키는 몇몇 과목들이 진절머리가 나서 공부를 안 했다. 둘째로, 학교 수학교사와 어린애 같은 다툼이 있어서 반항심이 생겼다. 셋째로, 어쩌다 접한 교과 외 수학들에 재미가 붙어서, 그런 낭만을 쫓으려고 발버둥 쳤다. 그런 자세로 살다 보니 내가 아무리 똑똑하다 한들 성적이 잘 나올 리가.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서 15명이 과학고에 지원했는데, 그중 10명 안에도 못 드는 성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과학고에 합격했다. 기대했던 결과를 얻음에 대한 기쁨과 함께, 근데 어떻게 붙었지? 하는 의심도 좀 들었다. 마침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내 입시를 담당하셨던 분--특히 면접관이었다.--이었어서 은근슬쩍 여쭤봤다. 그때 당시엔 중학교로 방문하여 면접을 보는 절차가 있었는데, 그때 뭔가 마음에 들었다고 하셨다. 와서 잘할 것 같다나... 뭐 아무튼 내가 수학을 대하는 자세가 인상 깊었다고 들었던 것 같다.

과학고에서는 공부를 꽤 잘했다. 뭐 사실 다 잘한건 아니니까 공부를 잘했다고 하기는 좀 그렇고, 수학하고 물리를 꽤 잘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당시에 그냥 이것저것 질문 던지고 고민하고 생각해보고 하면서 사고가 좀 유연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과학고 시험 특성상 그런 자세가 잘 맞았던 것 같고.. 딱히 내가 특출난 재능이 있거나, 엄청 똑똑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당시엔 몰랐는데, 돌이켜보면 참 그런 attitude를 형성하는 데에 여러 사람들의 영향도 많이 받은 것 같다.

뭐 아무튼 그래서 attitude가 중요한 것 같다. 특히 갓 학부를 졸업하고, 올여름부터 박사과정을 시작할 지금의 상황에서 이 attitude를 잘 형성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좀 있다. 솔직히 말해서 어떤 attitude를, 어떻게 형성해야 할지는 모른다. 이게 어려운 점이다. 단순히 그냥 책을 읽거나 논문을 공부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가지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생각은, 아직은 시야를 좁혀서는 안 되는 단계라는 거다. 특히 학문적 영역에서, 박사과정에 시작 전부터 시야를 좁히는 것은 위험한 것 같다. 이는 흔히들 박사 초년생들이 쉽게 겪는 문제라고 한다. "나는 이 분야를 할 거야"라고 정해두고, 그 분야의 것만 공부하는 반면 외의 것들은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참 쉽지만은 않다. 당연히 넓은 영역에 대한 계획은 있다. 다만 시간이 한정되어있고, 내 역량은 그걸 받쳐주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게 문제다. 물론 내 욕심일 수는 있다. 아무튼 쉽지 않다. 특히 몇몇 주제들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 중인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어렵다.

최근에 Yale에 Minsky 교수님과 이야기할 일이 있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것저것 편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요즘 뭐하냐고 물어보셔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들을 대강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조언을 좀 부탁드렸다. 정확히는, 내가 지금 이 분야에서 연구하고 공부하고 있는데, 이게 내 시야를 좁히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우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좁아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하시면서, 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관점을 갖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하셨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말씀에, 나를 누르고 있던 감정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고민은 계속된다. 피곤하겠지만, 삶의 매 순간순간 지금의 내 attitude는 어떤지 돌아보게 될 것이다. Attitude가 중요하다고는 했지만, 이런 attitude 역시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당장의 불만과 지적 정도는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시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attitude를, 어떻게 취해야 할지는 계속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고민으로만 끝나지는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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