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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아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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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 특별해지는 순간 오늘은 처음 와본 곳에 있다. 길을 가던 중 균형이가 "동률이랑 또 새로운 곳에 와보네"라고 했다. 처음 온 이곳이 특별해지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경험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오지만, 그것이 특별해지기 위해서는 새롭다는 것 이상의 요소가 필요한 것 같다. 당장에 처음이란 소재로 글을 쓰는 것도 처음인 것처럼 말이다. 작년 이맘때쯤인가, 처음으로 Blue Bottle에 가보았다. 왜 갔었는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마 잠시 시간을 보낼 겸 커피 마시러 갔던 것 같다. 나에게 그렇게 특별한 경험은 아니었다. 어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신 것은 정말 소중하다. 그 자체로도, 그리고 뉴 헤이븐에서 처음으로 마셨던, 소중함이 가득 담긴 스타벅스 커피를 상기시킨다는 점에서도 그 특별함을 찾을 수 있다. 이렇든 처음이라는..
나같은 사람이 수학에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Bill Thurston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수학자 중 한 명이다. Mathoverflow에 "나 같은 사람이 수학에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이 올라왔고, Bill Thurston의 이에 대한 답변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 중 하나이다. 평소에 틈틈이 반복해서 읽어보기도 하고, 공부나 연구하다 턱 막혀 밝지만은 않은 생각이 들 때도 읽어보고는 한다. 꼭 수학이 아니더라도 공부나 연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공부하다 딴짓도 좀 하고 싶기도 하고 마침 생각도 나서, 글 말미에 번역을 남겨본다. https://mathoverflow.net/questions/43690/whats-a-mathematician-to-do What's a mathemat..
정의 최근 지도교수님과 식사를 하던 중 교수님께서 아래의 구절을 인용하셨다. Statement is more important than its proof. Definition is more important than everything 수학적인 맥락에서 하신 말씀인데, 결국 어떤 명제에 대한 증명 자체보다는 그 명제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고,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옳은 정의를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옳은 정의를 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낯설게 들릴 수 있는데, 수학에서 무언가를 정의해야 하는 경우는 굉장히 많고, 그때마다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사고하고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류의 질문, 즉 무언가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최근에 깨달은 나에 대한 몇 가지 -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냉정하다. 사실 이 이야기를 나 스스로 깨달은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고, 그 이후에 스스로 되뇌면서 그때그때의 행동에서 냉정함이 묻어 나올만한 여지는 충분히 있었음을 느끼고 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나는 누군가 말을 하면 최대한 그 말 안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고, 그렇기에 스스로도 타인에게 직설적이게 된다. 나는 웬만한 대화는 스스로 되풀이하며 복기하고, 그 과정에서 혹여나 내가 의도하지 않은 의미로 대화가 흘러가지는 않았는지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최소한의 여지를 없애고자 점점 직설적인 전달을 추구하게 된다. - 위의 내용과 결을 공유하는 내용인데,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 선을 긋..
수학이라는 가치 15년 정도 되어가는 친구가 있다. 초등학생 때 알게 되었고, 같은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녔다. 어떤 주제의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대화를 하다 보면 안정감이 드는, 그런 친구다. 출국 전, 그 친구와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사과정과 그 이후에 대해서, 연구와 진로에 대해서였다. 친구는 나에게 아래와 같이 말했다. 수학은 네게 있어 하나의 가치처럼 보인단 말이지 와닿는 말이었다. 나는 수학이 좋다. 수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묵묵히 이를 생각하며 사람들과 사고를 공유하는 것이 좋다. 생각해보면 내가 수학을 함으로써 또 다른 가치를 실현하거나, 추구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수학을 해서 어떤 직업을 가져야겠다던가, 혹은 수학을 해서 부자가 되어야겠다던가. 또, 수학을 해서 자연의 ..
속초 떠나기 전 내일이면 속초를 떠난다. 출국은 3일 후이긴 한데, 내일 서울에서 출국을 위한 COVID-19 검사를 하고, 모레 검사지를 수령하여 목요일에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물론 겸사겸사 사람들도 만나고. 언제부턴가 멍하니 바다를 보거나 설설 걷는 것이 좋아졌다. 머리를 비우기 위해 그럴 때도 있고, 아련히 무언가 생각하기 위해 그럴 때도 있다. 속초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바다를 보러 나왔다. Yale은 미국 북동부에 있어서, 당분간 볼 바다는 대서양이다. 마음이 단순하지 않다.
일과 삶 멀게만 느껴졌던 박사과정의 시작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떠날 때가 되니 생각도 많아지고, 왜 이런 고민이 이제야 들까 하는 것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장의 나의 행동에 큰 변화를 가져오진 않을 테지만, 앞으로의 내 삶의 자세나 계획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최근에는 오후 5~6시쯤 하던 일을 멈추고 저녁을 먹고 산책도 하고 친구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나름 진지한 이야기까지도 하고 술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경험을 더러 했다. 썩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 이런 하루는 나에겐 생소했다. 유학 준비를 같이 해서 이번에 같이 출국하는 대학 친구와 산책하며 아래의 사진을 찍었다. 삼성역 즈음에서 출발해서 한강 따라 좀 걸었는데, 약간 샌프란 느낌도 나는 것이,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네가 될..
교사의 권력적 폭력 오늘 초등학생을 폭행한 교사에게 실형이 선고된 아래의 기사를 보았다. 놀라웠다. 저 교사의 행위가 놀라운 것보단 이제 저런 문제들이 다루어지고 기사화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방향이 놀라웠다. 기사에서처럼 초등학생에게 저 정도의 폭력을 가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중학생 때는 나무 막대기에 절연테이프나 청테이프를 칭칭 감은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교사는 흔히 보였다. 그것으로 허벅지나 발바닥을 때리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 내가 중학교 2~3학년 때만 해도 "학생들에 대한 체벌 금지" 같은 법안인가를 도입하는 것이 고려되었을 때인데, "정말 체벌이 없어도 될까?"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열띈 토론의 주제였다. 나는 중학생 때 강원도내 아동들의 권리 증진을 위한 콘퍼런스 등에 일종의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