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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것저것

2022 필즈상

미국시간 2022년 7월 5일, 필즈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필즈상은 4년에 한번, 40세 미만 수학자 중 네명에게 수상되는 상이다. 흔히들 필즈상이 수학계 노벨상이라고 표현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라 생각한다. 취지를 비롯해 여러모로 다르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굳이 수학계 상 중에 노벨상과 비슷한 것을 고르라면 아벨상을 말하고 싶다.

이번 수상자는 아래와 같다.

출처: https://www.mathunion.org/imu-awards/fields-medal/fields-medals-2022

이번엔 내가 전공하는 분야에 수상자가 없어서 나도 수상 업적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위 설명을 한글로 풀어 보자면 아래와 같다.

  • Dr. Duminil-Copin은 3, 4차원 통계역학에서 상전이 현상에 대한 확률론적 난제를 해결하였다.
  • Dr. Huh는 대수기하학의 호지 이론의 아이디어를 통해 이산수학 난제를 해결하였다.
  • Dr. Maynard는 해석적 정수론에 기여하였다.
  • Dr. Viazovska는 8차원 공간을 구로 채우는 최적화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교육받은 수학자가 필즈상을 수상하였다. 아래는 영상이다.

https://youtu.be/HJvb7aQcIXo

허준이 교수님께서는 국적은 미국이시지만, 한국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하시고 석사까지 한국에서 마치셨다. 허준이 교수님께서는 고등학생 시절 시인을 꿈꾸시다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하셨다. 그러던 중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님 (1970년 필즈상 수상자) 수업을 듣고 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셨다고 한다.

나는 허준이 교수님의 이런 박사과정 전까지의 스토리가 좋다. 마치 인생에 늦는다는건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 같다. 허준이 교수님 스토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허준이 교수님께서 올림피아드를 하시지도, 특정 고등학교를 졸업하시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올림피아드 훈련을 받으며 영재고, 과학고에 입학하는 것이 장점도 있겠다만, 수학을 공부하는 데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허준이 교수님을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얼마 전 건너들은 이야기인데, 요즘은 대치동에선 초등학생 때 부터 영재고/과학고 입학 준비를 한다고 한다. 올림피아드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환경에서 공부하기 위해 해야하는 것이 초등학생시절 대치동에서 밤을 보내야하는 것이라면, 무언가 심각히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 지내다 보면, 무언가 딱 정해진 타임라인이 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정해진 나이에 해야할 게 정해져 있고, 조금이라도 늦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것 같다. 시인을 꿈꾸다 물리학과에 입학하여 학부 졸업 막바지에 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던 허준이 교수님께서 이를 반증하는 좋은 선례를 남겨주신 것 같다.

끝으로 허준이 교수님 인터뷰 중 인상깊던 구절을 남겨본다.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2/01/01/ASP3UHRZTBD3VC7XN3LGQCIS2A/ 인터뷰 중:

-수학을 싫어했단 얘긴가요.

“처음엔 수학이 재미있었지만, 입시와 연관돼 있어 수학의 기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중3 때 경시 대회 나가볼까, 과학고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하시더군요. ‘나는 수학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해 버리게 됐어요. 수학자가 된 지금 돌이켜 보면 말이 안 되는 얘기예요. 한국 사람들은 ‘뭘 하기에 늦었다’는 말을 너무 많이, 가혹하게 해요.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어떤 일이라도 시작하기에 늦은 일은 없지 않을까요?”

-시인을 꿈꾼 수학자. 언뜻 연결이 안 됩니다.

“알고 보면 공통점이 많아요. 시는 어떻게 보면 모순적인 표현 양식입니다.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언어로 소통하려는 시도니까요. 그래서 시적 모호성이 생기죠. 수학은 땅으로 끌어내리기 어려운 추상적 개념을 수와 논리로 표현해 공유하는 거고요. 둘 다 대상을 고도로 함축해 강력한 상징을 만들죠.”

-호암상 수상 소감에서 “나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소설책처럼 한 번 읽어 바로 이해되면 좋으련만 수학자도 누군가 정리한 이론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 사람의 논리 사슬을 따라가야 하는데 내가 이미 만든 틀로 이해하려 들기 때문이죠. 그걸 편견이라 표현했어요. 사람의 두뇌는 천천히 생각하기를 잘 못 합니다. 어떤 정보를 주면 1초 만에 이런 걸 거야 하고 큰 그림을 그려 버려요. 상대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자기 나름의 파악을 끝내버리죠. 정교한 소통이 필요한 경우엔 큰 약점이 됩니다.”

-일상에서도 편견을 두지 않으려고 노력하나요?

“상대 말에 반발심이 생겨도 성급하게 결론으로 뛰어가지 말자고 마음 다잡습니다. 나중에 한 수 한 수 복기해 보면 내 편견이나 암묵적 가정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걸 아니까요.” 자기 확신에 찬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을 향한 뼈 있는 일침 같다. 수학을 연구하다가 인생을 통달한 듯했다.

-뉴호라이즌상을 탔을 때 “수학자의 내적 동기는 예술가의 그것과 같다”고 말했죠. 실제로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루이스 캐럴처럼 예술과 수학을 병행한 사람도 꽤 있던데요.

“기질적으로 비슷한 지점이 있어요. 둘 다 추상적 대상을 공유하면서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요. 내가 굉장히 애써서 어떤 아름다움을 간신히 봤는데 나만 아는 게 아니라 너한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인문학적 소양이 많아 보입니다.

“수학은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문학, 물리학 등은 자연이 만든 대상을 연구하는데 수학은 사람이 만들어 낸 걸 연구해요. 그런 면에서 철학, 문학과 오히려 결이 비슷하죠.”

https://www.mk.co.kr/news/it/view/2022/07/589839/ 인터뷰 중:

―젊은 학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스스로에게 친절했으면 한다. 어려운 주제에 접근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태도다. 오랜 시간이 드는 힘든 일을 마음에 맞지 않는 동료와 하고 싶진 않지 않나. 자기 자신과도 마찬가지다.

―도전하고 있는 또 다른 난제가 있나.

▷목표를 정해두면 마음이 경직되기에 어떤 문제를 '내가 꼭 풀어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한다. 마음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니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주되 조금씩 도와주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385247_35744.html 인터뷰 중:

[Q. 수학 좋아하는 이유?]
"어제는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이 너무 신기하고 중독성이 있어서 하루하루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한 때는 수포자?]
"그런 적 없어요. 제가 기자분한테 저희 2학년 때 구구단 외우는 거 너무 힘들었어요. 그랬더니 기사 제목을 수포자라고 쓰셨더라고요."

[Q. 수학은 예술?]
"무엇을 표현하고자 할지 아직 모르지만 표현을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그 상태가 예술의 그것하고 수학의 그것이 굉장히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Q. 어떤 수학자 되고 싶나]
"저는 지금 제 삶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꾸준히 그날 그날 하고 싶은 생각하면서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걸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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